한국 소개 - 문화

유네스코 등재유산

한국의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 미술, 문학, 무용 등 모든 예술에는 전통과 현대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건축, 의복, 음식 등 의식주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양식도 마찬가지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의 문화예술 유산 가운데 상당수는 유네스코 보호 대상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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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한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대륙문화와 해양문화를 모두 수용하고 자연조건에 순응하면서 독창적이면서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했다. 한국의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 미술, 문학, 무용 등 모든 예술에는 전통과 현대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건축, 의복, 음식 등 의식주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양식도 마찬가지다.

경주역사유적지구
경주는 천여 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으며, ‘벽과 지붕이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사진은 신라 고분군의 전경이다

한국의 문화예술은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젊은이들이 국제 콩쿠르 무대를 휩쓰는가 하면 많은 문학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외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 화가들의 단색화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술품으로 급부상했다.

K-Pop의 열기는 2020년 8월, 남성 그룹 BTS의 영어 싱글 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에 오르면서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아시아 가수가 핫 100 1위에 오른 것은 1963년 이래 처음이며, 한국 가수로서는 최초다. 이 기록은 특정 그룹의 쾌거라기보다 그동안 일본, 중국, 동남아를 거쳐 미국과 남미, 유럽 등 전 세계로 확산되어 온 K-Pop의 인기를 반영하는 결과물 이다. 유튜브가 대중화되면서 여성 그룹 블랙핑크 등 K-Pop 스타의 뮤직비디오가 폭발적인 조회 수 를 기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문화의 예술적 우수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삼국 시대의 고분벽화와 유물에서 느낄 수 있는 한국인의 독창적인 예술적 감성이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더욱 풍부해지고 깊어졌으며, 조상들의 이런 예술적인 감성의 DNA가 현재의 한국인 들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의 문화예술 유산 가운데 상당수는 유네스코 보호 대상으로 등재되 었다. 2020년 현재 세계유산, 세계기록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으로 등재된 건은 모두 50건이다

창덕궁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창덕궁은 조선 시대(1392~1910) 옛 궁궐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 유적이다. 1405년에 별궁으로 완공되었지만, 정궁이던 경복궁이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전부 타버리고 1867년 중건되기까지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을 정궁으로 사용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창덕궁 인정전
왕의 즉위식과 신하들의 하례 및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주요한 국가적 의식이 치러진 곳이다.

창덕궁은 조선 시대에 지어졌으나 고려 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자연지형에 맞춰 산자락에 지어졌다. 대부분의 궁궐이 권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건축되는 것과 달리, 창덕궁은 자연조건을 살려 북악산 줄기인 응봉의 산자락 모양에 맞게 궁궐을 기능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했다. 정문인 돈화문을 비롯해 인정전, 선정전 등 당시의 여러 건물이 고스란히 남았고, 한국의 전통 정원인 비원까지 딸린 훌륭한 역사유산이다. 궐에 위치한 낙선재는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간직 하고 있다.

종묘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한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 추존 왕과 왕비 등 모두 83위의 신주(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의지할 수 있는 상징물)를 모시는 조선왕조의 사당이다. 유교를 근본이념으로 한 조선 은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을 중요시하였는데 국가 차원에서 유교 이념을 실천하였음 을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종묘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이다.

전체적으로 대칭 구조이며 신주를 보관하는 건물인 정전과 영녕전의 기단과 처마, 지붕의 높이, 기둥의 굵기가 위계에 따라 다르게 되어 있다. 16세기 이래 원형이 보존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지닌 의례 공간으로 가치가 있다. 이곳에서는 왕실 조상의 넋을 기리는 종묘제례가 정기적으로 거행된다.

화성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화성은 1796년 조선 정조 임금 때 건립된 전체 길이 5.7km의 성곽이 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경기도 양주에서 이 근처로 옮기면서 성을 쌓도록 했다.성곽의 구조가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보통 성곽과 달리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갖춰 문화재로서 높게 평가받는다. 실학자인 정약용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개발한 거중기(움직도르래를 이용, 낮은 곳의 돌을 쌓는 데 사용)와 녹로(고정도르래를 이용, 크레인처럼 돌을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데 사용) 등 과학적 기구를 동원하여 성을 완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석굴암 · 불국사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 위치한 석굴암은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석굴 사찰로 774년 완공 됐다. 뛰어난 조각기법이 발휘된 작품으로 동해에 떠오르는 해의 빛이 석굴암까지 깊숙이 들어와 부처의 이마를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석굴암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불국사는 사찰의 전체적인 배치가 뛰어나며, 대웅전 앞마당에 나란히 서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특히 돋보인다. 두 탑 모두 신라 양식을 표현하면서도 석가탑은 단순하지만, 다보탑은 정교하고 화려하다.

화성
동서양의 군사시설 이론을 잘 배합한 독특한 성으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불국사 불교 교리가 사찰 건축물을 통해 잘 형상화된 사례이다. 사진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이다.

불국사
불교 교리가 사찰 건축물을 통해 잘 형상화된 사례이다. 사진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이다.

석굴암
높다란 연화좌대에 앉아 있는 석굴 안 본존불과 그 옆모습

다보탑은 화강석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 탑을 쌓은 형태로 한국의 석탑 중에서도 형태가 매우 특이하다. 한국의 10원짜리 동전에 다보탑이 새겨져 있다. 장식을 생략한 채 구조적인 비례에 따라 완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석가탑은 한국 불교 석탑의 원형으로 여겨져 이후 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불국사의 대웅전으로 오르는 청운교(푸른 구름다리)와 백운교(흰 구름다리)는 조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극락정토에 들어가려면 물을 건너고 구름을 지나야 한다는 종교적인 상징성도 내포 하고 있다.

조선왕릉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 홍유릉 등은 조선 시대의 왕릉이다. 모두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구리시, 고양 시, 남양주시 등에 있다. 조선 시대의 왕과 왕비의 무덤은 모두 44기며, 이 가운데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1. 동구릉
조선왕조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와 후비가 안장된 9능이 있다.

2. 영릉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3. 목릉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능.

왕릉은 유교 사상과 풍수지리 등 당시의 가치관이 압축된 장묘문화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문화 재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 왕릉이 훼손되지 않은 채 원래 모습대로 보존돼 있다는 사실도 주목 할 만하다.

해인사 장경판전

고려대장경 경판들은 해인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장경판전에 보관돼 있다. 1488년 완성된 장경판 전의 건축에는 원활한 실내 통풍과 방습으로 목재 경판의 부식을 막기 위해 과학적이고 독특한 방식 이 사용됐다. 대장경판이 보관된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해발 700m 지점에 지어졌다.건물은 네 방향으로 각각 마주 보도록 설계돼 통풍이 원활하다.

가야산 지형의 특성상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 을 이용해 자연 환기가 가능하다. 벽면의 위아래, 건물의 앞뒷면의 살창 크기를 다르게 해서 공기가 실내에 들어가 아래위로 돌아 나가도록 만들었다. 공기가 대류되도록 하고 적정 온도를 유지해주는 이 살창은 우수한 과학적 건축 기술을 잘 보여준다. 건물 바닥은 땅을 깊게 파고 숯,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 등을 뿌렸는데, 이는 비가 많이 오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가뭄이 들면 습기가 올라오도록 자동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무석인, 왕릉을 지키는 석물

조선 왕릉의 무덤은 돌판으로 보호되고 주위에 난간이 둘렸으며, 그 앞에는 온순함과 사나움의 상징인 양과 호랑이 형상의 돌 조각상이 배치돼 있다. 왕릉 정면에는 영혼 이 나와서 먹고 놀 수 있는 직사각형의 돌 받침이 놓였고, 좌우에 멀리서도 보이도록 8각형의 높은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동물 조각상 앞에는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만든 돌등이 세워졌고, 동·서·북쪽 삼면은 담을 쌓았다. 돌등 좌우에는 한 쌍 또는 두 쌍의 돌로 만든 문관조각상이 마주 서 있고, 그 뒤에 말 조각상이 배치됐다. 문관조각상 아랫단에는 무관(군인) 조각상이 같은 방식으로 세워져 있다.

 

남한산성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남한산성은 672 년 통일신라 문무왕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6 년 조선 인조 임금 때 대대적으로 수축됐다.

남한산성
통일신라에서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는 기간의 단계별 축성술 발전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산성이다.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하였으며, 둘레가 약 12.3km에 이른다. 산 위에 도시가 형성되어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약 4,000명이 남한산성에 거주했으며, 비상시에는 왕실과 군사 지휘부가 대피할 수 있는 임시수도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도성의 성격을 갖추기 위해 행궁을 비롯한 종묘와 사직단이 1711년 숙종 임금 때 조성되었다.

또한 남한산성은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계속된 국제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한국(조선), 일본 (아주치-모모야마 시대), 중국(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산성 건축술이 상호 교류한 중요한 증거로 파악된다. 이 기간 서양의 화포 도입으로 무기 체계가 변화함에 따라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남한산성에는 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시대별 성곽 축성술의 변화 과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660년까지 700여 년간 존재한 한반도의 고대국가 중 하나이다. 백제역사 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등 3개 시군 8곳의 문화유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부 등재지역을 살펴보면, 충청남도 공주시는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등 2곳, 충청남도 부여군은 관북리유적과 부소 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나성 등 4곳, 전북 익산시는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등 2곳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5~7세기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 동아시아 왕국들 사이의 교류와 그 결과로 나타난 건축 기술의 발전과 불교의 확산을 보여주는 고고학 유적이다. 또한 수도의 입지, 불교 사찰과 고분군, 건축물과 석탑을 통해 한국의 고대왕국인 백제의 문화, 종교, 예술미를 보여준다.

한국의 서원

서원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도입돼 조선 시대에 크게 꽃피운 학문인 ‘성리학’을 가르치던 교육기관 이다. 대부분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사이에 설립되었으며, 한국 중부와 남부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세워진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개 서원은 오늘날 한국의 성리학과 교육문화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서원을 이끄는 사람들은 각 서원이 위치한 지역의 지식인들로, 그들 덕분에 조선 시대는 서원 중심으로 문화가 발전하고 번성했다. 지식인들은 서원을 통해 후학들이 학습에 매진할 수 있는 교육 체계와 유형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서원의 핵심 기능인 학습과 상호 교류적인 특성은 건물의 배치에 서도 잘 드러나 있다.

공산성
금강변 야산의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산성으로, 백제 시대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고 불렀으나 고려 시대 이후에 공산성이라고 불렸다.

송산리 고분군
웅진 시대(475~538) 백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 1~6호분까지 7기가 복원되어 있다.

정림사지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이다. 5층 석탑과 석조여래좌상이 남아 있다.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에 지어진 서원이다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에 지어진 서원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용자례’ 초성, 중성, 종성별로 당시 국어의 예를 94개 단어로 제시한 부분.

훈민정음해례본의 ‘용자례’
초성, 중성, 종성별로 당시 국어의 예를 94개 단어로 제시한 부분.

훈민정음

한글은 독창적인 글자로 사용하기에도 간편하다. 다른 나라 글자들과 달리 발성 기관을 본떠 창조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과학적이다. 세종대왕이 1446년에 한글을 반포했을 때 공식 명칭은 훈민정음 이었다. 같은 해 학자들은 왕명에 따라 훈민정음 해설서를 만들었는데, 이 책의 제목도 훈민정음이므로 둘을 구분하기 위해 해설서를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도 한다. 한글을 창제한 목적과 원리 등이 상세히 설명된 훈민정음해례본은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으로 등재되었다.

배우기 쉽고 쓰기도 간편한 한글이 반포된 후에야 비로소 하층민과 여자들도 글을 익히고 사용 할 수 있었다. 한글은 반포 당시에는 모두 28개 글자였으나 지금은 24개만 쓰인다.

승정원일기

1623년 3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매일 처리한 문서와 사건을 일기 형식 으로 기록한 것이다. 역대 임금의 명령은 물론, 각 관청의 보고와 상소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총 3,243권에 이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돼 있다.

일성록(조선, 18~20세기)

조선 후기 왕의 활동과 국정 운영을 기록한 연대기이다. 왕의 입장에서 기록한 일기체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 공식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1760년(영조 36년)부터 1910년(융희 4년)까지 151년간의 기록이 총 2,32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8~20세기 조선 내부의 정치 활동부터 동서양의 정치·문화적 교류의 구체적 모습과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까지 담고 있다.

조선왕조 의궤

조선 시대 왕실에서 거행된 여러 가지 의례의 내용을 정리한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보다 내용이 자세하며 임금의 행차 모습 등이 그림으로도 표현되어 더 사실적이다. 왕비와 세자의 책봉과 혼례를 비롯해 왕실의 장례, 왕릉의 조성과 이장 등 제례가 주요 내용이 지만, 임금이 모범을 보이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이나 궁궐 건물의 신축과 보수 등의 경우에 도 의궤가 편찬되었다. 정조 임금 때 화성 성곽 축성과 수원 행차를 담은 상세한 의궤가 작성된 것이 그중 하나다. 의궤는 왕조실록과 마찬가지로 사고에 보관되었는데, 조선왕조 초기의 의궤는 1592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됐다. 다행히 그 이후 제작된 총 3,895권에 이르는 방대한 의궤가 남아 있다. 또한 1866년 프랑스군이 반출해 그동안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이 의궤는 한국 정부 와 학계의 지속적인 반환 요청으로 2011년 영구 임대 방식으로 모두 반환됐다.

일성록(조선, 18~20세기)
760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후기 왕의 활동과 국가 행정의 모든 측면을 매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연대기이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조선, 18세기) ‘가례’는 왕실의 큰 경사를 의미하는데 특히 ‘가례도감의궤’는 왕이나 왕세자의 결혼식을 정리한 기록을 말한다. 사진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와 계비인 정순왕후의 혼례를 기록한 의궤의 일부이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조선, 18세기)
‘가례’는 왕실의 큰 경사를 의미하는데 특히 ‘가례도감의궤’는 왕이나 왕세자의 결혼식을 정리한 기록을 말한다. 사진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와 계비인 정순왕후의 혼례를 기록한 의궤의 일부이다.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경판들로 고려 시대의 정치, 문화, 사상의 흐름과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역사기록물이다.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고려 시대(918~1392)인 1236년부터 15년간에 걸쳐 불경을 나무에 새긴 경판이 고려대장경판이다. 경판의 수가 총 8만 1,258개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경판마다 양면에 새겨져 있다. 현재 경 상남도 합천군의 해인사에 보관돼 있다. 해인사는 802년에 지어진 불교 사찰이다.

고려대장경판은 몽골의 침입으로 국난에 처한 고려가 불교의 힘으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작 됐다. 고려대장경판은 중국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때 새겨진 다른 대장경판과 비교할 때 불교 내용 이 훨씬 풍부하며, 경판이 온전히 보존된 값진 세계문화유산이다. 고려대장경판 제작은 한국의 인쇄 와 출판 기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한국 광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 요구 운동 으로,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을 확산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당시 시민들의 일련의 활동과 이후에 이 사건의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 기록되고 생산된 문건, 사진, 영상 등의 자료를 총칭하는데, 등재 기록물은 5·18 기념 재단, 국가기록원, 육군본부, 국회도서관, 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종묘제례악 일무(佾舞) 중 무무(武舞)
종묘제례악에서 추는 춤을 일무라고 하는데 일무는 문무(文舞)와 무무(武舞) 2종류로 나뉜다. 문무는 정적이면서도 부드럽게 추는 문인 취향의 춤이지만, 무무는 강하고 힘차게 추는 무인적 성격을 지닌 춤이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행하는 조선왕조의 정교한 기념 의식으로 매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거행 된다. 종묘제례는 조선 왕실에서 가장 격식이 높은 의식이었는데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자리 잡은 조선 시대에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통해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고 사회적 유대감과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종묘제례와 더불어 의식을 장엄하게 치르기 위하여 연주되는 기악(樂)과 노래(歌)·춤(舞)을 종묘 제례악이라 하는데, 타악기, 현악기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과 문무(文舞)와 무무(武舞)의 무용을 통해 중후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의식과 음악이 어우러져 500년 이상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온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

판소리는 한 사람의 창자(唱者)가 소리, 아니리, 발림으로 긴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고수는 추임새를 하며 북 장단으로 반주하는 극 노래이다. 18세기부터 현대까지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예술 음악으로 발달해왔다.

강릉단오제

한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으면서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축제이다. 매년 단오(음력 5월 5일)를 앞두고 강원도 강릉에서 30여 일간 진행된다. 마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번영, 집안의 태평을 기원하며 지역주민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협동 정신을 볼 수 있다. 단오제는 음력 4월 5일 신에게 바칠 술을 빚으면서 시작된다. 이를 ‘신주담기(신주근양)’라고 하는데 천상과 지상의 영혼을 연결하는 음식으로 술은 곧 신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강릉단오제
음력 4월부터 5월 초까지 영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통축제이다. 사진은 강릉단오제 중 관노가면극 공연 모습.

이 밖에 관노들이 춤과 몸짓으로 놀았던 한국 내 유일의 무언 가면극인 관노가면극을 비롯하여 그네뛰기, 씨름, 농악 경연대회, 창포물에 머리 감기, 수리취떡 먹기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특히 창포물에 머리 감기는 여자들이 단옷날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아 윤기를 더하게 하는 세시풍속이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전라남도의 해안 지역 일대에서 추석이나 정월대보름에 주로 부녀자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노래, 춤과 놀이가 혼합된 민속놀이이다. 현재는 예술적으로 발전하여 전국에서 민속공연으로 행해진다. 야외의 넓은 공간에 모여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추는 집단 무용을 기본으로 하고 중간에 ‘남생이놀이’, ‘덕석몰이’, ‘고사리꺾기’ 등 여러 놀이가 삽입된다. 강강술래의 노래는 한 사람이 메기면 나머지 사람 들이 합창으로 받는데 처음에는 느린 진양조의 가락으로 부르다가 점차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빨라 지며, 춤 동작도 여기에 맞추어 변한다.

강강술래

전라남도의 해안 지역 일대에서 추석이나 정월대보름에 주로 부녀자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노래, 춤과 놀이가 혼합된 민속놀이이다. 현재는 예술적으로 발전하여 전국에서 민속공연으로 행해진다. 야외의 넓은 공간에 모여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추는 집단 무용을 기본으로 하고 중간에 '남생이놀이', '덕석몰이', '고사리꺾기' 등 여러놀이가 삽입된다. 강강술래의 노래는 한 사람이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합창으로 받는데 처음에는 느린 진양조의 가락으로 부르다가 점차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빨라지며, 춤 동작도 여기에 맞추어 변한다.

남사당놀이
남사당놀이는 일종의 유랑악단인 남사당패가 장터와 마을을 돌며 펼치던 풍물놀이, 줄타기, 대접 돌 리기, 가면극, 꼭두각시놀음 등의 공연이다. 주로 농부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한국 고유의 민속 연희다. 북, 장구, 꽹과리, 징, 나발, 태평소를 연주하며 춤추고 노래한다. 김매기·논매기·모심기 등의 힘든 일을 할 때,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며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데서 비롯됐다.

영산재
사람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영혼의 극락왕생을 위해 행하는 불교의식이다. 고려 시대부터 전승 되어왔으며,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아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 록 하는 것이 영산재의 목적이다. 일방적인 공연이 아닌 대중이 참여하는 불교 의식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제사 의례뿐만 아니라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봉행되기도 한다.

판소리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 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창), 아니리(말), 발림(몸짓)을 섞어가며 구연(口演)하는 일종의 솔로 오페라이다.

제주칠머리당 영등굿

제주도 지역의 전래 마을굿의 하나로 풍어와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에 바람의 신인 영등 할머니가 마을과 집안에 들어와 떠돌 다가 보름날에 나간다고 여기는 민속신앙에서 비롯되었다.

택견

한국 전통무예의 하나로 각희(角戱)·비각술(飛脚術) 등으로도 불리는 택견은 ‘차기’라는 뜻을 가지 며 고문헌에는 ‘탁견’으로 나온다. 태권도와는 역사적, 기술적으로 다른 별개의 무예이다. 택견의 특징은 손·발과 몸동작이 근육의 움직임과 일치해 유연하고, 상대방과 자연스럽게 주고 받을 수 있는 무술이라는 것이다. 또한 음악적이며 무용적인 리듬을 갖고 있어 예술성 짙은 무예로 평가받는다. 다른 무예와 비교하면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고 발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경기 방법은 간단하다. 경기자가 각각 상대방을 향해 한쪽 발을 내딛는 대접(待接)의 상태에서 손발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얼굴을 발로 차면 이긴다.

줄타기

광대가 줄을 타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재담을 늘어놓는 놀이이다. 줄광대가 줄 위에서 재주를 부릴 때, 밑에서는 어릿광대가 익살을 부리며 분위기를 띄운다. 한때는 궁중에서 새해의 평안을 기원하던 나례나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잔치 등에서도 행해졌으나, 점차 마을이나 장터의 서민 놀이로 바뀌었다. 부잣집의 환갑잔치나 생일잔치 등에서도 선보이곤 했다. 한국의 줄타기는 외국의 줄타기와 달리 줄만 타는 몸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노래와 재담을 곁들 여 줄 타는 사람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진 놀이판을 이끄는 특징이 있다.

택견
유연한 몸동작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자기 몸을 방어하는 한국 전통 무술이다.

줄타기
줄만 타는 몸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노래와 재담을 곁들여 줄을 타는 사람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져 놀이판을 이끈다.

매사냥

야생의 매를 조련해 꿩이나 토끼를 잡는 사냥놀이이다. 한반도에서는 수천 년 전 시작돼 고려 시대 (918~1392)에 가장 성행했으며, 지역적으로는 북쪽에서 더 유행했다. 시기적으로는 음력 10월부터 겨울철을 지나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매의 발목에는 가죽끈을 메고 꼬리에는 길들인 주인 이름을 기재한 시치미와 방울을 달았다. 방울의 용도는 꿩을 잡아 땅으로 내려앉은 매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2010년 몽골, 프랑스, 체코, 스페인, 시리아 등 모두 11개 나라와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노랫말로 한국민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의 영어 악보

아리랑

아리랑은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민요이다. 하나의 곡이 아니라 지역마다 다양한 버전으로 전승되고 있다. 현재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는 약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른다.

아리랑은 여러 세대를 거쳐 국민들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노래이다. 누구나 새로운 가사와 멜로 디를 지어낼 수 있기 때문에 지역 특색에 맞게 다양한 버전으로 전승되어왔다. 가장 유명한 아리랑은 강원도 지역의 ‘정선 아리랑’, 전라남도 지역의 ‘진도아리랑’, 경상남도 지역의 ‘밀양아리랑’이다. 지역 마다 가락과 가사가 다르지만 모든 노래에 여음구에 ‘아리랑’, ‘아라리’ 같은 비슷한 구절이 들어간다.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 만큼 노래 내용도 다양하다. 농사일의 고충을 달래는 노동요, 이성 간에 마음을 전하는 사랑 노래, 풍요를 기원하는 노래, 즐거울 때 흥을 돋우는 유희요 등 노래를 부르는 상황과 목적이 무궁무진하다. 한 가지 공통점은 국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담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아리랑의 특징은 한국문화의 다양성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아리랑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에서 한국인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2000년 제27회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경기장에 입장할 때 아리랑을 불렀고, 2002년 제17회 한일 월드컵 경기 시에는 응원단체인 ‘붉은악마’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가로 아리랑을 불렀다.

김장문화

김장은 한국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월동 준비로 겨우내 먹어야 할 김치를 대량으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한국인의 밥상에는 주요 반찬으로 항상 등장한다. 따라서 김장은 한국인의 겨울나기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김장을 하기 위해서는 꼬박 1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 봄에는 각 가정에서 새우젓, 멸치젓 등 다양한 해산물 젓갈을 준비한다. 여름에는 천일염을 준비하고 늦여름에는 고추를 말려 고춧가루를 빻아 놓는다. 늦은 가을과 초겨울에 본격적인 김장 시기가 되면 준비한 재료로 가족 단위 에서부터 마을 단위 등 공동체별로 다 함께 모여 김치를 담근다.

김장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기 때문에 한국의 공동체 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따라서 김장 문화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현대의 한국인들이 연대감을 강화하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온 한국의 나눔 문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김장 문화는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2013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국 소개 - 문화

전통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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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락 조선 시대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음악 ‘여민락(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뜻)’의 연주 모습

국악

국악은 한국 고유의 음악과 무용을 통칭한다. 국악은 한민족의 역사와 유래를 같이하지만, 기초가 확립된 것은 15세기 초 세종대왕이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인 궁중음악을 재정비하면서부터다. 세종대왕은 악보인 정간보를 만들고, 고유 악기를 제작·정비토록 했으며, 손수 ‘종묘제례악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과 ‘여민락(국민과 함께 즐긴다는 뜻)’ 등을 작곡하기도 했다. ‘국악’이라는 말은 조선 말 외래음악이 들어오면서 장악원(掌樂院)에서 한국의 고유한 음악을 나타내기 위해 처음 사용하였다.

국악은 궁중에서 연주된 음악과 조선 시대 선비들의 풍류 음악인 정악과 정가, 평민들이 세속적 으로 즐겼던 판소리, 산조 같은 민속악 그리고 궁중에서 임금에게 바치기 위하여 추던 정재, 살풀이 와 승무 등의 민속무용을 모두 포함한다. 궁중음악과 영산회상, 가곡, 시조 등 상류계층이 즐기던 음악을 통틀어 정악이라고 부른다. 또한 무속음악·범패 등 불교음악, 민요·판소리·잡가·산조 등 민간에서 전래된 여러 형태의 음악을 민속악이라 부른다. 민요 중에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리랑’은 한국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밀양, 정선, 진도 등 지역에 따라 수천 가지의 아리랑 가사와 곡조가 전해진다.

국악을 연주하는 전통악기도 다양하다. 국악기는 피리, 대금, 해금, 가야금, 거문고, 장구, 북, 편종, 편경 등 60여 종에 이르며 악곡에 따라 다양한 조합으로 연주한다. 현악기로는 가야금, 거문고, 아쟁, 비파, 해금 등이 있으며, 관악기로는 대금, 피리, 단소, 태평소 등 이 있다. 북, 장구, 꽹과리, 징 등 타악기도 대중적인 전통악기이다.

부채춤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부채로 아름다운 모양을 구사하며 추는 전통 민속춤

민속춤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살풀이춤과 굿춤, 태평무, 한량춤 등 다양한 형태의 민속춤이 전승된다. 부채를 들고 추는 부채춤이 있는가 하면, 칼을 들고 추는 검무도 있다. 불교 의식에서 유래된 승무도 전해 내려온다. 민속춤 가운데는 가면 탈을 쓰고 양반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의 탈춤과 풍년을 기원하 며 농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농악춤이 가장 대표적이다. 탈춤이나 농악춤 공연에는 꽹과리나 북 등의 악기가 동원되어 분위기를 고조한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명선’(조선, 19세기)

회화, 서예

한국의 회화는 한국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돼왔다.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 백제, 신 라인의 웅혼하면서도 정교한 그림 솜씨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일본에 전파하기도 했다. 특히, 고려 시대에는 불교미술이 유행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문인화가 유행했다. 산수화는 어느 시대에나 인기가 있었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네 가지 식물을 가리키는 사군자와 호랑이, 사슴, 학 등 동물이 그림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18세기부터는 궁궐이 아닌 서민들의 생활상을 다룬 풍속도가 유행했다. 김홍도, 신윤복 등 천재 화가의 풍속도에는 여름날에 여인들이 허벅지를 드러내놓고 냇가에서 더위를 식히는 모습 등 당시 로는 파격적인 장면이 표현되기도 했다.

먹으로 강약을 조절해 예술적으로 선을 그리는 글씨는 회화와 곁들여지기도 하지만, 서예라는 독자적인 예술의 장르로 한국인에게 널리 사랑을 받아왔다. 종이, 붓, 먹, 벼루를 선비들의 ‘문방사우’ 라 불러온 것이 그 증표의 하나이다. 김정희(1786~1856)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서예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서예가 이다. 그는 현대인이 봐도 놀랄 정도의 파격적인 조형미를 가진 글씨체를 개발했는데, 이를 그의 호를 따서 추사체라고 한다.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의 ‘씨름’(조선, 18세기)

한국의 전통 스포츠인 씨름 경기 장면을 구경꾼들이 앉아서 바라본 시각을 그대로 옮겨와 실제 씨름 장면을 연상케 한다. 현장감뿐만 아니라 그림 속 인물들의 각기 다른 표정과 모습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전라남도 강진 가마터
고려청자의 중심지였던 전라남도 강진에는 옛날에 청자를 직접 만들었을 실제 가마가 발굴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도자기

한국의 전통 도자기는 크게 청자와 백자로 나뉜다. 비취색의 청자는 700~1000년 전의 한국도자기를 대표한다. 특히 표면에 홈을 파내고 희고 검은 흙으로 문양을 만든 상감청자는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기술이다. 전라남도 강진과 전라북도 부안은 청자 가마터로 유명했다.

청자 참외 모양 병 (고려, 12세기)
청자 모란 무늬 항아리 (고려, 12세기)
분청사기 연꽃넝쿨 무늬병 (조선, 15세기)
백자 끈 무늬병 (조선, 16세기)

백자는 100~600년 전의 한국도자기를 대표한다. 백자에는 채색이 없는 순백자, 코발트로 푸른 색의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 산화철의 붉은색을 이용한 철화백자 등이 있다. 코발트는 중국을 거쳐 페르시아로부터 수입되던 귀중한 염료였다. 경기도 광주에 관요(국가에서 직영하던 도자기 가마)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의 선진 도자기 기술은 400년 전에 한국을 침략해 도공을 납치해간 일본에 전파되었다.

청자와 백자 외에도 500~600년 전에 유행하던 분청사기가 있다. 분청사기는 고려의 관요에서 활동하던 도공들이 왕조가 멸망하고 가마가 해체되면서 독자적으로 만든 도자기이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여러 화랑과 골동품상은 물론 경매를 통해 그림, 서예작품, 도자기 등의 전통 예술품이 널리 거래되고 있다.

전통 공예

한국 공예품은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실생활에서 사용됐으므로 종류가 다양하다. 나무를 이용해 장롱· 문갑·탁자 등 각종 가구를 만들었으며, 대나무·등나무·왕골·싸리 등으로 일용품을 만들어 사용 했다. 한지를 활용해 탈과 인형을 만들거나, 한지를 꼬아 엮어서 장식에 응용하기도 했다.

옻나무 껍질에서 채취한 수액을 보석함·경대·반짇고리에 칠해 아름다움과 내구성을 더했으며, 쇠뿔을 종잇장처럼 얇게 펴서 갖가지 문양을 그려 넣은 화각 제품도 만들었다. 조롱박에도 조각하고 색깔을 칠해 장식품으로 쓰고, 전복·소라 등 조개껍데기도 얇게 가공해 가구 장식으로 이용했다. 부녀자의 공예로는 자수와 매듭이 있다. 바늘과 실로 천에 무늬를 놓는 자수는 한복·병풍·보료 장식에 이용되었고, 실을 꼬아 만든 매듭으로는 다양한 노리개를 만들었다. 자수와 매듭 이외에 천을 여러 색깔로 물들이는 염색공예도 성행했다.

의류를 보관하는 2층으로 된 장
내구성과 실용성뿐만 아니라 문 부분의 자개 장식이 예술성을 더한다.

머리 빗는 도구를 담는 빗접

다양한 색채의 천연염색 천

다양한 색채의 천연염색 천

노리개(매듭)와 자수, 여러 가지 색실로 무늬를 수놓아 만든 액세서리

노리개(매듭)와 자수, 여러 가지 색실로 무늬를 수놓아 만든 액세서리

닥나무껍질을 원료로 만든 한지(닥종이)를 하나하나 붙이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닥종이 인형

닥나무껍질을 원료로 만든 한지(닥종이)를 하나하나 붙이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닥종이 인형

 
 

한국 소개 - 문화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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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권역을 중심으로 한국의 TV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인기를 얻었다. 1997년 TV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중국 CCTV에서 방영돼 중국의 역대 수입 영상 콘텐츠 2위를 기록했으며, 이때부터 한국문화 열풍을 이르는 ‘한류’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2003년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방영한 TV 드라마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크게 흥행했으며, 드라마 촬영지인 춘천의 남이섬은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지로 사랑받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빅뱅, 소녀시대, 카라 등 ‘아이돌 스타’라고 불리는 한국의 보이그룹과 걸그룹 중심으로 한류가 확산됐다. 이 시기의 한류는 아시아에서 더 나아가 중남미, 중동 등 더 넓은 세계무대로 뻗어나갔으며 특히 10~20대 젊은 연령대에 사랑받았다.

드라마와 음악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탄탄한 기반을 다진 한류는 2010년대를 기점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유튜브, SNS 등의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한국문화의 매력이 전 세계로 알려지 면서 이제는 한국 전통문화, 음식, 문학, 한국어 학습으로까지 한류 열풍이 확대되고 있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에서 수상해 K 무비 를 알렸다.

한류 문화에 열광하는 한류 동호회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매년 동호회 수는 7%, 회원 수는 36% 증가하고 있으며, 2020년 기준으로 세계 각국에서 한류 동호회에 가입한 회원 수는 총 1억 명에 육박한다. 이는 5년 만에 5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한류 동호회 가운데는 BTS 팬클럽 ‘아미’, 블랙핑크 팬클럽 ‘블링크’ 등 K-Pop 팬클럽이 가장 많다. 그 외에 한국 드라마, 음식, 관광 등 여러 분야의 동호회 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BTS
BTS는 K-Pop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2020년 8월에는 디지털 싱글 ‘다이너마이트’를 발매한 첫 주에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고, 2주 차에도 정상을 차지했다.

EXO, 흐트러짐 없는 군무로 세계를 사로잡은 아이돌 그룹 엑소

트와이스, 국내는 물론 글로벌 팬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트와이스가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K-Pop

K-Pop이란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은 유행 음악을 총칭한 이름이다. 원래는 가요라고 불렀지만, 최근 영미권의 대중음악을 팝(Pop)이라고 부르고 영미권 이외 국가의 대중가요는 국가 이니셜에 Pop을 덧붙여 표기하는 추세다(태국 가요는 T-Pop, 일본 가요는 J-Pop, 중국 가요는 C-Pop). 이에 한국 가요도 흔히 K-Pop이라고 부른다.

K-Pop은 200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권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현 재 동남아를 넘어 유럽, 미국, 남미로까지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동방신기, 카라, 빅뱅, 소녀시대, 2NE1 등의 아이돌그룹이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에서 폭발적인 인기 를 얻으며 K-Pop은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걸그룹 원더걸스가 ‘Nobody’로 미국에 진출해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했다.

2012년에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빌보드 핫100 차트 7주 연속 2위에 오르고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 조회 수 30억 뷰를 돌파하면서 K-Pop 열풍이 본격적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2019년 BTS가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오르고 3년 연속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소셜 아티 스트상에 오르는 등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K-Pop은 하나의 장르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BTS는 2020년 2월 앨범 ‘MAP OF THE SOUL : 7’로 빌보드 200 차트 1위 진입 후 23주 연속 상위권을 지켰 으며, 라이브 스트리밍 음악 콘서트 최다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각종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 8월에는 영어 싱글 곡 ‘다이너마이트’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에 오르는 기록을 달성했다.

K-Pop의 영향력은 점점 확장되는 추세다. 2019년에는 미국의 대중음악 시상식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베스트 K-Pop 부문을 신설했다.

K-Pop에서 눈에 띄는 트렌드는 아이돌그룹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아이돌그룹 으로는 BTS, 블랙핑크, 트와이스, 엑소, 레드벨벳, SF9, NCT, ITZY, 몬스타엑스 등이 있으며 한국에는 150개 이상의 아이돌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K-Pop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데, 그 가치는 단순히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K-Pop의 인기 비결은 뛰어난 가창력, 능숙한 무대 매너, 현란한 댄스가 어우러진 화려한 공연에 있다. 공연을 완성하는 아이돌그룹의 노래와 안무는 하루 이틀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수년간의 철저한 사전 기획과 연습생 시기 동안의 체계적인 훈련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팬들과의 활발한 소통은 K-Pop의 뜨거운 인기를 설명하는 또 다른 포인트다. 아이돌그룹 멤버 들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세계 각국의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발빠르게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한다.

K-Pop에 열광하는 세계 팬들

팬들은 활발한 팬클럽 활동을 통해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와 나아가 K-Pop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팬들은 가수를 단순히 스타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돌그룹의 데뷔 혹은 초창기 시절부터 응원해 온 팬들은 순수했던 멤버들이 소년·소녀에서 성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들도 함께 성장하는 것 같은 만족감과 보람을 공유하며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최근 K-Pop은 다방면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아이돌그룹이 주축으로 활약하는 가운데 꾸준히 인디뮤지션이 활약하고 있으며, 아이돌그룹과 인디뮤지션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장르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아이유, 선미, 여자아이들, 비투비, 세븐틴 같은 아이돌스타들은 기성 작곡가나 작사가에 의존 하지 않고 직접 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 한 단계 발전하고 있다.

또한 주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아이돌그룹을 기반으로 한 2차 콘텐츠를 통해 굿즈 등의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여 K-Pop의 부가가치를 최대한 높이고 있다. BTS의 노래 ‘버터플라이’ 가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서적, 블랙핑크 AR 아바타 서비스 등이 대표적인 예로, K-Pop 팬들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드라마

한국 드라마가 한류 열풍에서 한발 더 나아가 ‘K 드라마’라는 하나의 독립 장르로 인정받으면서 세계 각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1997년 중국에서 인기를 끈 ‘사랑이 뭐길래’와 2002년 일본에서 흥행한 ‘겨울연가’ 이후 꾸준히 세계에서 사랑받아왔다.

궁중음식을 소재로 2003~2004년 방영한 ‘대장금’은 일본, 중국, 터키 등 91개국에 수출됐다. 이 드라마는 한국 음식, 패션, 의학 등 한류의 범위를 확장하고 세계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2013년에는 ‘별에서 온 그대’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이 한류 팬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2016년 에도 ‘도깨비’, ‘구르미 그린 달빛’, ‘태양의 후예’ 등의 드라마가 한류 열풍을 되살렸다.

2019년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 화제를 모았다. ‘킹덤’은 탄탄한 각본과 연출력 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시즌 2까지 제작되었으며, ‘K 좀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드라마를 본 외국인들이 SNS를 통해 작품의 배경인 조선 시대의 건축과 의복 양식에 대한 감상을 자유롭게 드러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한국 전통모자인 ‘갓’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면서 해외 쇼핑사이트 아마존에서 갓이 판매되기도 했다.

이처럼 화제성과 작품성을 인정받던 한국 드라마는 2020년에 들어서 더욱 많은 해외 팬을 확보 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한 OTT 시장의 수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2020년 방영한 ‘사랑의 불시착’은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 나라에서 선보였다. 남한의 재벌집 딸과 북한 남자 장교의 사랑을 다룬 이 드라마는 일본에서 10주 동안 넷플릭스 순위 탑 10에 오르는 등 아시아권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태양의후예는 32개국에 수출돼 1조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냈다.

사랑의 불시착, 북한 군인과 한국 재벌 딸의 로맨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북한 군인과 한국 재벌 딸의 로맨스 드라마

영화

한국 영화는 세계에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시장이다.

미국영화협회(MPAA)에 따르면 2018년 한국 영화의 시장 규모는 전 세계 영화시장의 전체 규모인 411억 달러 중 16억 달러로 북미, 중국, 일본,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크다.
한국은 인구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전 세계에서 1위인 데다, 자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51%에 달한다.

101년 역사를 지닌 한국 영화는 국제영화제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해외에 널리 소개되고 있다. 1961년 ‘마부’가 한국 영화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 영화는 독일 베를린, 프랑스 칸, 이탈리아 베니스 등 소위 3대 국제영화제라 불리는 영화제에서 두드러진 활 약을 보여주고 있다.

‘올드보이’, ‘오아시스’, ‘버닝,’ ‘밤의 해변에서 혼자’ 등의 영화가 주요 부문을 수상했으며 봉준호,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김지운 등의 한국의 유명 영화감독이 해외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2019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 상하고,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세계인들이 관심 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아카데미에서 주요 상을 휩쓸자 세계 유명 매체 에서는 연달아 한국 영화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아가씨’, 영화 비평 웹사이트 로 유명한 ‘로튼 토마토’는 ‘시’를 추천하며 한국 영화를 집중 조명했다.

한편 한국 내에서도 다양한 국제영화제를 개최해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아시아 영화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한국 최대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은 매년 다채로운 콘셉트와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전 세계 영화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 영화는 OTT 플랫폼을 통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20년 6월에 개봉한 ‘#살아 있다’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이틀 만에 35개 나라 글로벌 무비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OTT 를 통한 한국 영화 해외 공개의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다.

기생충, 은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상을 수상했다.

기생충, 은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정명훈은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오페라극장 음악 총감독 겸 상임 지휘자를 지냈다.. 2013년 7월에는 베니스 라 페니체극장 재단의 ‘평생 음악상’을 수상했다.

음악

클래식 음악계에서 한국인 아티스트들이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다.

2015년 세계 최고 권위의 폴란드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피아니스트 손정범은 2017 뮌헨 에이알디(ARD) 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수상했다.

이외에도 2016년에는 이탈리아 베르첼리에서 열린 ‘안 바티스타 비오티’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 성악가들이 1~3위를 석권했으며, 같은 해 ‘프라하 봄’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도 한국인 피아니스 트들이 나란히 1~3위를 거머쥐었다.

성악 부문에는 소프라노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 베이스 연광철,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등이 활약하고 있다. 기악 부문에는 피아니스트로 손열음, 임동혁,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신현수 등이 주목받고 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이희아도 의욕적인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한동일과 백건우는 이미 1950~1970년대부터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1세대 피아니스트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정명훈은 지휘자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베를린 필, 런던 필, 파리 오케 스트라 등의 객원 지휘자를 거쳐 파리 바스티유오페라단 음악 총감독 겸 상임 지휘자를 지냈다. 한국에서도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를 지낸 뒤 현재 원코리아 유스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누나인 정명화(첼로), 정경화(바이올린)와 함께 ‘정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세계 음악계에 이름 을 날린 주인공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김은선은 2021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을 맡게 됐다. 이번 발탁을 통해 김은선은 미국의 메이저 오페라단에서 음악감독을 맡는 최초의 여성 지휘자 로서,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

한국에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시카고’ 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한국 창작 뮤지컬을 다양하게 관람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 연출가들의 창작 뮤지컬이 세계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일본, 중국, 대만, 동남아 등에서 한국 스태프들이 투어 공연을 하거나 라이선스 공연을 성사시키며 K 뮤지컬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한 ‘김종욱 찾기’, ‘빨래’ 등이 대표 작품이다.

최근에는 아이돌그룹 멤버가 뮤지컬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외국인 팬들이 K 뮤지컬에 관심을 갖는데 매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백조의 호수
마린스키발레 &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동양인 최초로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김기민과 올레샤 노비코바가 열연하고 있는 모습

현대무용, 발레

1962년 국립무용단이 창단하면서 현대무용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높아졌다. 대표적인 현대무용 가는 아방가르드 경향을 추구하는 홍신자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무용학을 전공하고, 안무가 알윈 니콜라이 등을 사사했다.

한국 발레는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단의 공연을 통해 활발하게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리나는 현재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은 강수진이다. 그녀는 동양 인 최초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경력이 있다.

2011년에는 세계 최정상 클래식 발레단으로 인정받는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 한국인 남자 무용수 김기민이 동양인 최초로 입단하여 수석 무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12년 7월에는 세계 정상급 발레단인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에 서희가 한국인 최초로 수석 무용수가 됐다.

2017년 6월에는 세계 3대 발레 콩쿠르로 꼽히는 ‘모스크바 국제발레 콩쿠르’에서 박선미가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수상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 제1 무용수인 박세은은 2018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발레리나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광주비엔날레
문화도시이자 민주도시인 광주는 한국-아시아-세계와의 교류를 넓혀나가는 국제 현대미술의 장이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9월 제1회를 시작으로 격년제로 열리는 현대 설치미술 전시회이며, 아시아 최초의 비엔날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현대미술

한국 작가들이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이면서 한국 현대미술이 가치를 인정받는 분위기다.

2006년 타계한 백남준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다. 단색화 거장인 이우환, 하종 현, 박서보는 해외 컬렉터들이 주목하는 작가다.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는 2020년 뉴욕 구겐하임미술 관에서 성황리에 전시됐다.

서울과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양혜규는 2019년 영국의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 잡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파워 100’에서 36위에 올랐다. 2020년에는 미국, 캐나다, 영국 등 각국 에서 개인전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현대미술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인사아트스페이스, 공평아트, 경인미술관 등 화랑이 밀집된 서울 인사동과 삼청동을 방문하면 된다. 최근에는 서울 청담동과 한남동 일대에도 화랑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다양한 현대미술 축제가 열리고 있다. 유명한 미술 축제로는 1995년부터 2년 마다 개최되는 광주비엔날레 등을 꼽을 수 있다.

현대문학

최근 몇 년 사이 한국문학, 그중에서도 한국소설이 국제화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세계 문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2011년 소설가 신경숙과 2016년 소설가 한강이 거둔 성과가 있었 기에 가능했다.

한강은 2016년 단편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에서 인터내셔 널 부문을, 2017년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했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2011년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아마존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해 화제가 됐다. 이 소설은 미국판 출간 이후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30여 개국에서 번역·출판됐다.

이러한 쾌거에 힘입어 한국문학이 해외에 출판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문학 해외 출간 건수는 2017년 69건, 2018년 74건, 2019년 91건으로 매년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문학의 인기 요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사회문제를 등장 인물의 개인사로 녹여 내는 서술방식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유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페미니즘 성격이 강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다. 이 소설은 18개국에 판권이 수출됐으며, 2018년 일본에서 발매한 지 2달 만에 8만 부를 기록하며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문학 부문에서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서는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기도 했다.

그 밖에 박완서, 황석영 같은 한국의 원로작가부터 장강명, 정은영 등 젊은 작가까지 다양한 작가 들의 작품이 해외에서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다.

한식

한류 바람은 한식 분야에도 불고 있다. 세계 유행을 주도하는 파리, 런던, 뉴욕을 비롯해 세계 각처에 한국 식당이 늘어나고, 식도락가들의 한식에 대한 평가가 매우 호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김치, 불고 기, 비빔밥 등 한식의 대표 메뉴가 이제 세계인의 메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미국의 레스토랑에는 비빔밥 버거, 고추장 양념 갈비 등의 퓨전 음식이 등장했다. 김치 핫도그와 고추장 스테이크도 선보여 뉴요커들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건강식을 선호하는 세계적인 트렌드와 맞물려 한식이 웰빙 식단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식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이 적절하게 균형 잡 힌 식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채소 반찬을 통해 비타민과 무기질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인정해 세계보건기구(WHO)는 2004년 한식을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모범식으로 선정했다. 미국의 종합신문 USA 투데이는 2020년 가장 인기를 끌 음식으로 베트남 쌀국수, 양배추와 함께 김치 를 선정했다.

이러한 인기 덕에 과거 해외 한식당은 주로 교민을 비롯한 동양인들이 찾았으나 지금은 현지인 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파리의 한식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비빔밥과 불고기로 조사됐으며, 특히 비빔밥은 채소 위주의 웰빙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보며 직접 한식 레시피를 따라하는 사례도 많아졌다.